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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72년째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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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그동안 놀러도 한 번 제대로 못가고, 고생만 시켜 미안허네...사랑허이”

 

최순관 할아버지는 지난 72년간 아내와 함께 해온 순간들을 돌이키며 이같이 말했다.

 


 

 

“워낙 못 먹고 못 살던 세상에 살기도 했지만, 식솔이 많아 집사람은 뭐 잠도 못 자고 일만 죽도록 했지…. 그 때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고, 할멈 얼굴도 제대로 못 보지 뭐. 그 때 고생시킨 만큼, 더 위해 주고 더 사랑한다네."

 

1943년 12월 24일, 당시 20살이었던 화산 총각 최순관 할아버지는 17살이었던 여산 처녀 신현녀 할머니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 징집을 피하기 위해 맺어진 조금은 이른 부부의 연이었지만, 어릴 적 함께 자랐던 동네 이웃이자 서로에게 첫 사랑이어서 그 연은 더욱 애틋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고 아담해서 귀여운데다 예쁘기까지 하니, 사실 처음부터 맘이 없진 않았지…. 그러던 중에 왜정 때 어린 여자들 위안부로 끌려갈 적에 할멈 집안에서 서둘러 내게 시집을 보냈지. 얼마나 좋던가, 말도 마”

 

그러나 달콤한 둘의 만남과는 별개로 결혼 생활은 녹록치는 않았다. 대가족인데다 자녀도 많이 낳아 가계를 꾸려 나가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에는 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할아버지도 허리 한 번 곧게 펼 수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 집이 7남매인데다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살았거든. 그리고 곧바로 아들 셋, 딸 넷을 낳아서 나도 나지만, 할멈은 손이 다 부르트게 일을 하고, 심지어 등잔불까지 켜놓고 주야 없이 일을 했다네. 얼마나 고생을 시킨 지…. 말론 다 못 혀”

 


 

그럼에도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찰떡 부부. 그래서인지 옆에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존재를 느끼며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

 

“왜정 때 군대로 끌려가긴 했는데 시흥훈련소인가. 거기서 한 두 달간 있다가 곧바로 해방돼서, 그 때 떨어져 있던 거 말곤 없지…. 70년 넘게 함께 했으니, 안 보고 말 안 혀도 다 알지. 할멈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어”

 

자녀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10여 년 전부터는 부부에게 있어 제2의 삶이 펼쳐졌다. 단 둘이 오붓하게 텃밭도 가꾸고 손잡고 동네 산책도 다니며 다시 한 번 사랑의 싹을 틔우고 있는 것.

 

신현녀 할머니는 “아들, 딸 모두 다 시집, 장가보내고 증손자까지 봤어. 더 바랄 게 뭐가 있겄어. 이렇게 죽는 날까지 영감이랑 함께 오순도순 살면 되지. 사랑해요, 영감”이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할아버지도 “요즘은 할멈이랑 이렇게 단 둘이 지내는 게 그렇게 행복혀. 바랄 게 있다면 한 날 한 시에 함께 떠나는 거 겠지만, 뭐 그렇게는 힘들것지. 세상 뜨는 날까지 사랑혀야지, 나도 사랑해요, 할멈”이라고 말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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