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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가 능사 '빅밴(bigban)' 인도가 낳은 부조리…'강간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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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2


성범죄 근절 시위에 참석한 한 인도 여성 © AFP=News1

 

 

인도는 두 번 가봤다. 2013년 1월 첫 방문 때 묵었던 뉴델리와 아그라, 바라나시에 있는 싸구려 숙소의 TV에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분노와 좌절을 분출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매일, 거의 매시간 보였다. 한 달 전 뉴델리의 버스 안에서 무참히 능욕당한뒤 살해된 여대생 사건이 인도 사회에 끼친 파장은 컸다.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옮겨간 것은 이때가 처음이란 건 훗날 알게 됐다. 

 

두 번째 방문했던 2014년 3월에 뉴델리 도심에는 긴급구호 전화가 거리를 따라 촘촘히 놓여 있었다. 격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성폭행범에 대한 최고 형량을 사형으로 높이는 등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터라 이를 확인한 셈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이후에도 사건은 꼬리를 물었고, 성범죄가 터질 때마다 더욱 많은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4대 문명 발생지이자 신(神)의 나라 인도에는 '강간공화국(Rape Republic)'이라는 오명이 자연스럽게 따라 붙었다. 20분마다 강간 사건이 벌어지고 10건당 4건만 사법의 심판을 받으며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허술한 처벌규정, 남성 우월의식,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 등으로 인해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곁들여졌다. 

 

최근 미카엘 슈타이너 주인도 독일 대사의 편지가 인도 내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일 것이다. 슈타이너 대사는 "인도의 강간 문제"를 거론하며 인도 남학생의 인턴십 지원을 받아주지 않은 아네트 베크 지킹거 라이프치히대학 교수에게 지난 9일 편지를 보내며 "명확히 합시다. 인도는 강간범들의 국가가 아닙니다"라고 항변했다.

 

슈타이너 대사는 "이 다양하고 다이내믹하며 매혹적인 나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라"고 충고하면서 "인도에서 '니르바야 사건(뉴델리 버스 사건, 힌디어로 용감하다는 뜻)'은 생생하고 정직하고 지속적인 그리고 무척 건강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시켰다. 다른 다수의 국가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높은 수준의 토론이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인도의 다양한 모습들 © 최종일 기자=News1

 

 

그는 "어제 뉴델리에서 여러 사회운동가들과 '여성의 날'을 축하했다"며 "당신의 과도하게 단순하고 차별적 일반화는 인도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매진해온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자, 준법적이고 관대하며 열린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수백만 인도인들에 대한 공격이다"고 해 자존심에 상처난 인도인들을 달랬다.

 

슈타이너 대사의 말처럼 인도에서는 육중하고 완강한 전통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다채로운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외부인의 시선에 아연실색하게 하는 대목이 있다. 

 

'니르바야'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무케시 싱의 사고방식을 날것으로 전한 영국의 여성 감독 레슬리 우드윈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인도의 딸'이 방송 금지된 것이 그것이다.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공론화를 꺼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안만 특별한 것일까.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은 정부 요청을 받아 콘텐츠를 제한하는데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국가별 순위에서 파키스탄(1773건)이 3위, 터키(1893건)가 2위였다. 1위는 인도로 건수는 무려 4960건에 달했다. 

 

몇몇 인도 매체들이 인도를 "빅밴(BigBan)이론 최강국", "금지 공화국" 등으로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사례는 부지기수다. 특히 성적인 문제에 대해선 엄격하다. 인도 제 1의 경제 도시 뭄바이가 주도인 마하라슈트라에서는 상점 쇼윈도에서 마네킹이 란제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 금지돼 있다.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다. 란제리 차림의 마네킹을 진열하는 것은 여성의 품위를 저하시키고 남성들로 하여금 성적으로 여성들을 공격하게 만든다는 것이 시 당국자의 생각이다.

 


성범죄 근절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도 여성들 © AFP=News1

 

450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로 있으며 가톨릭 문화가 뿌리를 내려 다른 지역과 다른 자유로운 문화로 유명한, 인도 최고 휴양지 고아에서는 비키니 착용 금지가 논의됐다가 강한 반발에 없던 일이 됐다. "성추행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주(州) 장관이 들었던 금지 이유 중 하나다. 뭄바이에서는 몇년 전까지 수백 개의 댄스바(dance bar)가 성업했는데 지금은 금지됐다.

 

사회적 논란과 문제에 대한 가장 손쉬운 해법은 금지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금지는 일단 문제를 덮고 외면하려는 심산이 깔린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인도 성범죄 해결에는 성의식 개선과 여성 인권신장, 법률 정비 등 다층적 접근이 필수다. “당할 땐 조용히 허락했어야 한다”는 성범죄자 무케시 싱의 인식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 까발려지는 것은 이에 속한다.

 

지난해 압도적 지지로 당선돼 친시장 경제개혁에 적극 임하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성범죄 사건을 보고받을 때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고 고백했다. 사회개혁없는 경제개혁은 토대가 무를 수밖에 없다. 또 한 사회의 추한 면을 다뤘다고 다큐멘터리를 금지시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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