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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남에 뿌려진 성매매 '찌라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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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

 

인쇄업소들이 밀집한 서울 중구 충무로 골목. / 사진 = 머니투데이DB

 

'부와아아아아앙~.'

엔진 소리에 일어나보니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눈이 부시다. 오토바이에서 뭉텅이로 떨어지는 친구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밤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있는 내 모습이 유리에 비친다. 나는 성매매 '찌라시'(불법 광고 전단지)다.

인쇄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 충무로에서 태어나 하루 뒤인 지난 20일 저녁 8시 이 곳에 뿌려졌다. 이미 몇몇 친구들은 키득거리는 남자들의 손에 들려있다. 내 몸에 그려진 벌거벗은 여자의 사진이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앞으로 8~9시간도 못돼 청소부의 쓰레기통에 버려질 나. 하지만 강남의 화려한 밤에 빠지지 않는 존재다. 술에 취한 강남 밤하늘의 수많은 네온사인보다 길거리가 더 화려하게 반짝이는 이유다. 모양과 색상도 가지각색.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찌라시 전쟁

하지만 나를 모두가 반기진 않는다. 경찰과 자치구 단속반에겐 짜증나는 존재다. 나를 없애기 위해 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길거리에 뿌려지는 찌라시는 엄청난 쓰레기일 뿐 아니라 청소년들을 범죄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강력한 단속에도 내가 여전히 강남의 밤거리를 수놓는 이유는 그만큼 손님들을 끌어 모으기 때문이다. 불법 성매매 업소가 광고를 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다 찌라시의 저렴한 생산 가격도 메리트다.

찌라시를 거리에서 몰아내려는 단속반의 눈은 더 매서워졌다. 강남구에선 2012년부터 서울시 특별사법경찰관들이 성매매 업소를 집중 단속하면서 일차 타깃으로 찌라시를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수거된 찌라시를 수거해 적힌 번호를 즉시 사용중지 했다. 수만장씩 출력한 찌라시가 무용지물이 됐다. 특히, 찌라시를 뿌리는 아르바이트생을 붙잡아 역추적 하는 방식은 효과가 컸다.

최근에도 경찰은 이 같은 방법으로 강남역과 선릉역 인근 오피스텔 성매매와 키스방 등 유사성행위 21개 업소를 단속해 280명을 입건하고 전단지 18만 여장을 압수했다. 자연스레 찌라시가 줄었다.  

 

불법 성매매 찌라시들 / 사진제공 = 뉴시스

 

하지만 찌라시 업체들은 이름을 바꾸는 방법으로 여전히 곳곳에 기생하고 있다. 나 같은 찌라시를 만들기 위한 교묘한 꼼수도 늘었다. 선정적인 사진이나 단어가 아니라 간단히 상호명만 넣어 단속을 피하면서 유흥업소 느낌은 살리는 디자인이 고안됐다. 은유적 표현으로 법망을 피하는 방법도 동원된다.

불법 성매매업소 관계자 뿐 아니라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 인쇄업체에 의뢰한 사람, 만드는 사람까지 모두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형사입건이 가능하다. 처벌을 강력하게 하니 다소 위축되긴 했다. 그래도 업체들이 남아있는 만큼 여전히 찌라시는 성행하고 있다.

007작전 펼쳐 뿌려지는 '찌라시' 출생의 비밀

충무로에서 태어난 내가 강남까지 오는 과정은 그야말로 비밀 군사작전이나 첩보영화를 방불케한다. 단속반이 퇴근하고 없는 금요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 옮겨진다. 단속반도 이때를 노리지만 이를 피해 도착하는 게 운송업자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길거리에 뿌려지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단속반이 찌라시에 적혀진 번호를 정지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짧은 기간 최대의 효과를 내야한다. 시간은 강남에 사람들이 몰리는 금요일에서 토요일 밤 7~9시에 융단 폭격을 가한다. 이때 사람들로 가득한 길거리를 요리조리 피할 수 있는 오토바이가 제격이다.

나를 비롯한 찌라시들은 출생은 '일급비밀'이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정작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찌라시 제작도 최고벌금 1000만원에 달하는 단속대상이다.

3~4년 전부터는 벌거벗은 여자 사진이 아니라 '뉘앙스'만 풍겨도 단속된다. 찌라시를 만드는 인쇄소 자체가 확연히 줄었다.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려면 돈을 2~3배는 줘야한다.

A4용지 절반 사이즈 1만장 제작비가 20만~25만원. 찌라시는 100만원을 줘도 마다하는 업체들이 많다. 대한민국 인쇄물 메카인 충무로에서도 찌라시의 출생지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인터넷에서 소규모로 영업하거나 아예 중국에서 뽑아 들여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내 위치한 불법 성매매 업소들. / 사진 = 머니투데이DB

 

충무로에서 33년간 일하고 있는 인쇄소 주인 A씨. 찌라시를 한번 만들어줬다가 벌금 300만원을 맞았다. 이 할아버지는 "몇년전만 해도 주문이 들어오면 작업을 했지만 단속을 맞고부터는 생각도 안 한다"며 "하지만 먹고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찌라시 제작 인쇄업소 단속은 사실상 어렵다. 찌라시 배포자에서부터 거꾸로 성매매업주를 단속하는 것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신고도 없다. 특히, 인쇄업소에 이유 없이 들이닥쳐 디자인을 확인하는 것은 과잉단속의 소지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당을 받고 찌라시를 돌린 사람만 단속하는 수준이다"며 "찌라시를 뿌리 뽑기 위해선 성매매 업주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찌라시만 갖고 성매매 업주를 붙잡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인쇄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 충무로의 깊은 밤 '철커덕' 소리 몇 번에 강남에 뿌려질 수만장의 불법 찌라시가 태어나는 이유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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