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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승용차 탄 장정들이 화투공장 찾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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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0


 

 

커다란 도화지만한 빨간 판에 형형색색의 동양화가 그려진 투명한 필름을 덧댄다. 여기에 연료를 뿌려 판과 필름을 딱 붙인다. 

 

이렇게 완성된 빨간 판을 기계에 집어넣으면 툭툭 잘려서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카드가 되어 나온다. 설 명절의 감초, 화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지난 16일 설을 사흘 앞두고 찾은 경기 남양주시의 화투공장에서는 6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화투를 찍어내고 있었다. 

 

보통 한달에 200목(화투 1통을 의미하는 단위)들이 박스가 400~500개씩 나가지만 요새처럼 명절을 앞두고는 한달에 1000개씩 나간다. 이들에게 설과 같은 명절은 그동안 쌓아뒀던 화투 재고를 처분하는 기간이다.

 

"옛날에 비해 판매량이 많이 줄어든거야. 요새 사람들은 화투를 잘 안 쳐. 10년 전만 해도 설을 앞두고는 하루 1만목은 제작했는데 요새는 6000목 정도밖에 안 만들어."

 

이곳에서 오랜 세월 화투를 만들어 온 황영민씨(51)의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몇달 전부터 물건을 미리 확보하느라 도매상끼리 전쟁을 치렀을 시기다. 그러나 요새는 오히려 만들어놓은 화투 재고가 남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투는 시간이 지난다고 변하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 안 팔리면 공장 한 켠에 쌓아두면 그만이다. 

 


 

 

기계에서 잘라져 나온 낱개의 화투장은 두 명의 직원의 손에 의해 케이스에 담겨 포장됐다. 화투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포장은 만드는 과정만큼 중요하다. 제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최후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화투 한 장이라도 흠이라도 있으면 그 화투는 통째로 쓰레기통 행이다. 황씨는 "화투장 하나에라도 표시가 다르거나 흠이 있어 구분이 되면 우리가 제작하는 화투의 신뢰도와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며 "그래서 하나라도 잘못되면 통째로 폐기처분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화투에도 '레벨'이 있다고 공장 직원들은 말했다. 선수들과 일반인이 쓰는 화투가 다르게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 공장에서 나오는 A급 화투의 이름은 '무지개'. 타짜들부터 시작해서 전문 게임장인 일명 '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들까지 이 공장에서 만드는 '무지개'를 찾는다.

 

이날도 공장에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성이 검은 승용차를 타고 찾아와 "이거 흠집 있는 건 아니냐"며 화투를 꼼꼼하게 들여다본 뒤 4박스나 차에 실어갔다. 공장의 한 직원은 "저 사람은 하우스에서 직접 물건을 떼러 나온 사람이다"라고 귀띔했다. 

 

김재수씨(50)는 "이 공장에서 만드는 화투 전체 중 30% 정도가 무지개다"라며 "꾸준한 고객이 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받는 신뢰와 브랜드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매우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무지개' 제품의 경우 좀 더 고급스러운 재질을 사용한다. 화투 필름 그림에 이상이 없는지, 화투를 칠 때 상대편에게도 보이는 빨간 판의 맨 뒷판에 흠집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재료와 제작과정의 차이 때문에 일반 화투인 '일출'이 한 목에 2000원인 반면, 무지개는 4500원이다. 2배 이상 비싼데도 불구하고 생산량 대비 판매량은 무지개가 더 높다. 

 

이렇게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드는 화투의 제작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판매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공장 직원들은 역설적이게도 "화투의 적은 화투"라고 말했다. 고스톱 열풍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탓이다.

 

황씨는 "요새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지 화투를 사서 같이 게임하고, 이런 거 잘 안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명절에 빼놓을 수 없는 친구인 화투를 만드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살아온 만큼 화투소비의 가파른 감소가 아쉬울 뿐이다. 

 

요새처럼 '스마트'한 시대는 화투공장에는 우기(雨期)다. 그래도 이들은 언젠가는 무지개가 뜰 거라는 꿈을 꾼다. 황씨는 "그래도 스마트폰 게임 덕분에 젊은이들이 고스톱을 많이 익혔더라구. 언젠가는 복고의 시대가 찾아와서 우리 화투를 다시 찾지 않겠어?"라며 환하게 웃었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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